위 치 :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
율곡선생의 부친인 이원수공이 인천 수운판관으로 벼슬하던 중 여가를 틈타 강릉 본가로 오다가 날이 저물어 이곳에서 하룻밤을 쉬어가다가 율곡 선생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.
<참고>율곡 이이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웠고 1548년(명종3)13세로 진사시험에 합격했다. 또한 천도책을 지어 별시에서 장원을 하였으며, 전후 아홉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일컬어졌다. 33세에 부교리로 춘추기사관을 겸임하여 <명종실록>편찬에 참여하였고 34세에 <동호문답>을 지어 올렸다. 47세에 이조판서에 임명되고 48세에 <시무육조>를 계진하고 십만양병을 주청하였다. 49세에 서울 대사동에서 별세하였으며 파주 자운산 선영에 안장되었다.
*교통정보
-승용차
장평IC에서 6번국도를 타고 봉평으로 약 5분(2km)정도 가다보면 우측으로 판관대 표석이 나타난다. 여기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수려한 경관의 팔석정의 모슬을 드러낸다.
-대중교통
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장평행 시외버스가 20-30분 간격으로 있으며, 소요시간은 약 3시간 장평에서 봉평까지 운행(7회)하는 시내버스가 있다.(소요시간 5분)